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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방송

[영화] 짐과 앤디 (Jim & Andy : The Great Beyond, 2017)

by 신어지 2023.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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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짐과 앤디]를 감상했습니다. 영화제나 시네마테크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었을 법한 이런 작품들도 넷플릭스를 통해 가끔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시네마테크 상영관이 서 있었던 비좁은 자리 마저 넷플릭스와 같은 OTT들이 빼앗아 버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예전 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감상하기도 훨씬 편리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예전의 환경 그대로였다면 [짐과 앤디]를 보지 못했을 것이란 점은 확실합니다.

 

 

[짐과 앤디]는 미국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먼의 전기 영화 [맨 온 더 문](1999)의 메이킹 필름과 관련 영상 자료들을 돌아보는 짐 캐리의 인터뷰가 내용의 전부입니다. 극장 상영 당시 일반 관객들에게 [맨 온 더 문]은 당대 최고의 코미디 배우로 위상이 드높았던 짐 캐리와 밀로스 포먼 감독의 신작이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논란의 영화이기도 했었는데 그 논란이 어떤 내용인지는 잘 알려지지가 않았었죠. 앤디 카우프먼이라는 인물도 영화를 통해서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앤디 카우프먼을 연기했던 짐 캐리가 영화를 찍는 동안 뭘 어떻게 했는지는 누가 알려줬더라도 별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겁니다. 어쨌든 이 영화로 짐 캐리는 골든글로브 코미디/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을, 밀로스 포먼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고 저는 앤디 카우프먼이라는 괴짜 코미디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짐과 앤디]에 등장하는 짐 캐리의 모습은 영화나 TV 쇼에서 보여지던 모습과 많이 달라보입니다. 연기를 하지 않고 있는 55세 짐 캐리의 모습인 것이죠. 놀라운 사실은 짐 캐리의 커리어가 [맨 온 더 문]이 정확히 정점을 찍은 이후 서서히 하락세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경력을 시작해 1994년 [에이스 벤츄라]로 장편 영화의 주연으로 데뷔, [마스크](1994)와 [덤 앤 더머](1994)에서부터 [트루먼 쇼](1998)로 이어지는 배우로서의 성공 스토리는 눈이 부실 지경이지만 [맨 온 더 문] 이후 출연작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들도 있긴 했지만 확실히 그 이전만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다큐멘터리 [짐과 앤디]는 2016년 [트루 크라임]에서 [수퍼 소닉](2019)과 TV 시리즈 [키딩]으로 복귀하기 전까지 약 4년 간의 공백기에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이하 스포일러)

 

 

코미디언으로서 경력을 시작했을 때 즈음 짐 캐리는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답을 얻게 되고 이후 관객들이 자신을 통해 '걱정 없이 사는 인물'을 보게 해주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짐 캐리 자신은 아픔과 고통이 있지만 무대 위에서와 카메라 앞에서는 자신만의 '하이드'가 나설 수 있게 한 것이었고 [에이스 벤츄라]를 시작으로 이어진 자신의 성공작들은 모두 영화 속 캐릭터에 완전히 빙의되어서 연기를 해왔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짐 캐리는 [맨 온 더 문]을 촬영하면서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는 순간까지도 앤디 카우프먼과 그의 부캐였던 토니 클리프턴으로 살았습니다.

 

 

경계 파괴의 코미디언이었던 앤디 카우프먼을 짐 캐리가 연기하면서 영화 안팎으로 다시 한번 경계 파괴가 일어난 상황은 [맨 온 더 문]의 메이킹 필름에 고스란히 기록이 되어 20년 간 공개가 되지 않다가 [짐과 앤디]를 통해 '선택적으로' 보여지게 된 셈이죠. 짐 캐리가 앤디 카우프먼이나 토니 클리프턴으로 빙의되어 밀로스 포먼 감독을 비롯한 스탭들을 괴롭게 만드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1984년 35세의 나이에 사망한 앤디 카우프먼의 동료들이 그대로 [맨 온 더 문]에 출연하거나 촬영장을 방문하기도 하면서 감동의 순간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짐 캐리가 아닌 앤디 카우프먼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짐 캐리를 주변 인물들까지 더이상 짐 캐리가 아니라 앤디 카우프먼으로 대하고 있었죠.

 

 

[맨 온 더 문]의 촬영과 관련된 에피소드 중에서도 압권은 앤디 카우프먼이 프로레슬러 제리 로울러와의 경기에서 목 부상을 입고, 데이빗 레터맨 쇼에 출연해 따귀를 맞은 일화를 그대로 재현한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맨 온 더 문]에는 제리 로울러 역에 제리 로울러 본인이 출연을 했고 촬영장에서 짐 캐리는 살아생전 앤디 카우프먼이 제리 로울러에게 했을 법한 시비를 걸며 신경을 자극했고 결국 레슬링 경기 장면을 찍던 도중에 제리 로울러에게 공격을 당한 짐 캐리가 실제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가는 사고가 터지게 됩니다. 그리고 데이빗 레터맨도 직접 출연한 토크쇼 장면에서는 스턴트맨을 쓰기로 했던 계획을 무시하고 제리 로울러에게 짐 캐리가 맞아 쓰러졌다가 책상을 내려치며 고함을 지르다가 나가버리는 '그때 그 장면'을 고스란히 재연해냈습니다.

 

 

어찌보면 영화 한 편 찍는데 그렇게까지 또라이짓까지 해야했나 싶기도 하지만 그때의 짐 캐리는 촬영장 안과 밖에서 앤디 카우프먼이 되었고 그 결과물이 [맨 온 더 문]이었던 것입니다. 메소드 연기가 아니라 빙의 연기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짐 캐리는 [맨 온 더 문]의 촬영이 끝난 이후 더이상 앤디 카우프먼으로 남고 싶지는 않았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야만 했다고 말합니다. 걱정과 고민 거리도 많고 고통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 짐 캐리로 말이죠. 앤디 카우프먼을 비워낸 짐 캐리가 그 공백을 적절하게 잘 메워가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초월명상에 심취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 짐 캐리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은 [짐과 앤디]에서 짧게 드러나기는 하지만 확실히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짐과 앤디]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미련마저도 버린 채 초연한 자세도 삶을 바라볼 수 있었던 시점의 짐 캐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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