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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방송

[영화] 더 원더 (The Wonder, 2022)

by 신어지 2022.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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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새로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원더]를 감상했습니다. 이미지 컷만 보아도 플로렌스 퓨가 출연한 시대극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긴 한데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의 기대를 갖고 봐야할지는 알 수가 없어 IMDb에서 미리 기본적인 정보를 찾아봤습니다. 먼저 평점이 6점 후반대로 아주 좋은 호평을 받고 있는 건 아닌 듯 합니다. 아일랜드 배경의 넷플릭스 영화이고 엠마 도나휴라는 작가의 원작을 각색한 작품이네요. 칠레 출신의 감독 세바스티안 렐리오 역시 그다지 낯익은 이름이 아니었는데 필모그래피에서 예전에 보았던 작품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레이첼 맥아담스와 레이첼 와이즈 주연의 [디서비디언스](Disobedience, 2017)를 연출했던 그 감독이라니 저에게는 [더 원더]를 기대해도 좋은 근거, 최대한 빨리 봐야할 이유로 충분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영화의 첫 장면에 상당히 특이한 점이 있는 작품입니다. 1862년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는 영화에서 이런 시작이라니요. 첫번째 컷에서 카메라의 시점이 현실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세트장을 비추는 것으로 출발하여 그 안에 마련된 영화의 첫 장면 세트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게 왠 실험영화스러운 첫 장면인가 싶었는데 다행히 영화 중간에 몰입을 방해하는 일은 없었고,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카메라가 시점을 이동하여 영화 세트 밖으로 나와서 마무리됩니다. 이런 걸 문학에서는 수미쌍관이라고 하긴 하는데... 액자식 구성이라고 하기에도 이건 좀... 첫 장면의 나레이션에서 언급되는 바와 같이 인간에게 "이야기"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작품 자체를 통해 질문하고, 이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게끔 하는 시도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진이 그렇듯 영화도 빛의 예술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는데 [더 원더]가 바로 그렇습니다. 자연광만을 이용해 촬영한 것은 아니겠지만 시대와 지리적 배경상 어두운 실내 장면이 많았는데 이 때마다 거장의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 감탄을 하며 보게 되네요. 제가 19세기 아일랜드의 것들을 고증할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들의 의상이나 프레임 안에 담긴 모든 것들이 이렇게까지 완벽해보이는 작품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촬영 감독이 어느 분이신지 찾아보니 호주 출신의 아리 웨그너라는 여성 분입니다. 주요 작품으로 [레이디 맥베스](2016), [파워 오브 도그](2021)가 있고 코엔 형제와도 작업 계획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만점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생각할 거리가 더 있겠지만 일단 삶에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가치를 잘 강조해준 작품이라 좋습니다. 그외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거의 흠 잡을 만한 곳 없는 베리 웰메이드 작품입니다. 시대극이라 별로였고 왠지 무거울 것 같은 분위기도 별로였지만 일단 보기 시작하면 평소의 호불호에 상관 없이 몰입해서 감상하게 되는 훌륭한 영화적 체험을 제공해줍니다. 어찌 보면 딱 공포물일 것만 같은 세팅이지만 오히려 영화 전체적으로 초현실적인 요소는 배제되어 있는 편입니다. 오직 등장 인물들이 간절하게 믿고 있는 "이야기"만이 초현실적일 뿐이지요.

 

 

줄거리라기 보다 이 영화의 출발은 아일랜드 시골에 4개월째 금식 중이라는 소녀 애나(킬라 로드 캐시디)가 화제의 인물이 되고 이를 검증하고자 하는 지역 위원회(이 놀라운 기적을 확인받고 싶은 쪽에 가까운)의 초빙으로 런던의 간호사 엘리자베스(플로렌스 퓨)가 2주 간의 관찰 기간을 갖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독실한 카톨릭 신앙과 과학적 검증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더 원더]의 이야기는 신앙심 깊은 금식 소녀의 진위 여부에서 서서히 그녀의 위태로운 생명을 어떻게 구해낼 것인가로 관점을 옮겨가게 됩니다. 놀라움, 기적이라는 뜻의 영화 제목 역시 소녀를 통해 일어난 종교적 기적에서 새로운 의미의 기적으로 달리 다가오게 됩니다.

 

 

영화의 첫 장면처럼 마지막 장면 역시 1862년 영국-아일랜드 간의 여객선 안으로부터 현실의 영화 촬영 세트장으로 빠져나오며 끝나는 이 영화에서 "이야기"란 당시의 영화 속 인물들이 간절하게 믿고 의지하던 신앙을 의미하기도 하고 [더 원더]라는 영화가 관객/시청자들에게 들려주는 영화 속 이야기를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겠죠. 이야기의 "안"과 "바깥"에 관한 메타포 역시 두 가지 의미에 모두 부합합니다. [더 원더]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이야기"에 대한 맹신(때로는 그것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이 작용할지라도)은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강조하는 시대이기도 하고 오랜 옛날부터 스토리를 너무나 사랑해온 인류에게 정말 가치 있는 이야기란 과연 어떤 것인지 새삼 돌이켜보게 됩니다. @

 

 

TMI 하나. 각색 과정에도 직접 참여한 원작자 엠마 도나휴는 중세와 근세에 걸쳐 여러 차례 있었던 실제 "금식 소녀"들의 사례들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영화에서와 같이 검증 과정이 진행되면서 실제 쇠약해지거나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고 하네요.

TMI 둘. 극중 모녀 관계로 출연한 일레인 캐시디와 틸라 로드 캐시디는 실제 모녀지간이기도 합니다. 일레인 캐시디의 얼굴이 좀 낯익더라고요. 그녀가 연기한 엄마 로잘린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다시 풀어보아도 아주 훌륭한 이야기가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TMI 셋. 극중 자막이 나오지 않는 비영어 대사가 몇 차례 나오는데 아일랜드의 토착 언어인 게일어일 겁니다. 현재 아일랜드 공식 1언어의 지위를 갖고 있긴 하지만 실 사용 인구는 얼마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지금도 길안내 표지판 등에 영어와 병기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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