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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방송

[영화] 암스테르담 (Amsterdam, 2022)

by 신어지 2022.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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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신작 [암스테르담]이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되어 감상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 없이 바로 스트리밍 서비스로 넘어왔습니다만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지난 10월 정식 극장 개봉이 진행되었던 작품입니다. 약 8천만 불의 예산으로 제작되었는데 전세계 흥행 수익이 3천만 불을 겨우 넘기는 수준이었으니 상당히 안타까운 수준의 흥행 성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영화가 흥행에서 매번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조이](2015) 이후 7년만에 발표한 이번 작품에서는 손실이 좀 크게 난 것 같아 앞으로의 행보에 걱정이 앞서기도 하네요.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암스테르담] 역시 마치 무슨 영화상 시상식인 것 마냥 수 많은 배우들이 줄을 지어 출연했습니다. 워낙 오랜만에 내놓는 7년만의 복귀작이었기 때문에 배역의 비중이나 출연료의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 참여해준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영화의 중심 인물들인 버트-해롤드-발레리 삼총사는 그 조합만으로도 이목이 집중될 수 밖에 없는 크리스찬 베일, 존 데이빗 워싱턴, 마고 로비가 각각의 배역을 맡았고, 내용상 또 한 명의 주인공이랄 수 있는 길 딜렌벡 장군 역에는 로버트 드 니로가 함께 했습니다.

 

특히 크리스찬 베일과 로버트 드 니로는 데이비드 O. 러셀 감독 영화에서 이미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춰온 단골 배우들인데, 그간 자주 함께 했던 브래들리 쿠퍼나 에이미 아담스는 아쉽게도 이번 작품에서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외 꽤나 많은 배우들이 크고 작은 배역으로 참 많이도 등장하는데(출연진 얘기만으로도 포스팅을 다 채울 수 있을 정도라 생략) 특이할 만한 한 명을 꼽자면 가수인 테일러 스위프트가 모습을 드러내 크게 이질감 없는 좋은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암스테르담]은 경제 대공황과 1차 세계대전 이후 193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에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서고 미국 내에서도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선거도 없이 독재자를 옹립하려 했던 실화 또는 음모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긴박감을 불러일으키는 정치 스릴러라기 보다 등장 인물들이 함께 부르는 '넌센스 송'과 같이 코믹하면서도 감미로운 멜로디처럼 진행됩니다. 데이빗 O. 러셀 감독의 기존 영화들에 비해 배경 음악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직접 부르는 노래 장면들까지 포함해서 음악의 사용에 무척 적극적인 편이고,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상 3년 연속 수상에 빛나는 엠마누엘 루벤즈키 촬영 감독의 카메라 역시 평균 이상의 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영화 전반에 발랄한 느낌을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분명 뮤지컬 영화는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뮤지컬과 같은 느낌의 연출입니다.

 

 

12년 전 1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에서 미군 병사들과 간호사로 만난 버트-해롤드-발레리 세 사람은 버트(크리스찬 베일)와 해롤드(존 데비잇 워싱턴)가 부상에서 회복되자 암스테르담에 있는 발레리(마고 로비)의 거처로 옮겨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만끽하며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전쟁은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비극들 가운데 하나였지만 고통과 비극을 다른 각도에서 볼 줄 알았던 세 사람은 그 안에서 인생 최고의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전쟁터로 오기 전에 이미 결혼한 몸이었던 버트는 두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귀국을 결심합니다. 귀국 후 뉴욕에서 자신과 같은 상이군인들을 돕는 뒷골목의 의사로 일하며 진통제에 의존하던 버트는 약물 과용으로 곤경에 빠지게 되고 이 소식을 알게 된 해롤드와 발레리도 자신들의 에덴 동산, 암스테르담에 더이상 머물지 못하고 원치 않은 이별을 하게 됩니다.

 

 

세 사람이 12년 만에 재회하게 된 장소는 뜻 밖에도 뉴저지의 대부호 톰 보즈(레미 말렉)의 저택이었습니다. 유럽에서 가명을 사용하고 있던 발레리는 사실 보즈 가문의 딸이자 톰 보즈의 여동생, 발레리 보즈였던 것이죠. 살인 누명을 쓰게 된 버트와 해롤드가 신원 보증을 부탁하기 위해 찾아간 보즈 저택에서 세 사람은 우연이 아닌 예정되었던 재회를 하게 되고, 미국에도 인종차별적인 파시스트 정권을 수립하려는 자들의 음모에 함께 맞서 싸우게 됩니다.

 

 

다른 감독이라면 훨씬 다른 톤의 각색과 연출로 접근했었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은 스릴러적인 구성이나 역사적인 교훈을 강조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시그니처를 남길 수 있는 작품이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구상은 아마도 트럼프 정권 시기에 시작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게 하는데 지난 대선 결과에 대한 불복으로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 국회를 점거했던 사건이 그랬듯이 1930년대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좀 더 오싹하고 실감나게 그리기 보다는 그와 같은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찾아가야 할 올바른 지향점을 강조하는 데에 방점을 찍는 모양새입니다.

 

[파이터](2010),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2012), [아메리칸 허슬](2013), [조이](2015)와 같은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흥행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조금 모자른 편이었던 초기작 [쓰리 킹스](1999)나 특히 [아이 하트 허커비](2004)와 같은 자신만의 주제 의식과 화법에 치중하는 작품을 다시 내놓았다고 할까요. 덕분에 흥행 참패의 기록을 떠안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암스테르담]과 같은 근사한 작품을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감상할 수 있어 제게는 그저 감사하고 극장에서 감상할 기회가 없었던 것에 조금은 미안할 따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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