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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방송

[영화] 페일 블루 아이 (The Pale Blue Eye, 2022)

by 신어지 2023.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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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첫번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된 [페일 블루 아이]를 감상했습니다. 배우 출신이기도 한 스콧 쿠퍼 감독은 제프 브리지스 주연의 음악 영화 [크레이지 하트](2009)를 데뷔작으로 조니 뎁 주연의 [블랙 매스](2015), 그리고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아웃 오브 더 퍼니스](2013)와 [몬태나](Hostiles, 2017)를 연출했죠. [페일 블루 아이]는 스콧 쿠퍼 감독과 크리스찬 베일의 세번째 합작품입니다. [페일 블루 아이]의 원작은 루이스 베이야드 작가의 2003년 동명 소설인데 1830년 뉴욕의 웨스트포인트(미 육군 사관학교)를 배경으로 하면서 미스테리한 살인 사건의 해결하는 과정에 당시 사관생도였던 미국의 추리소설 작가 에드가 앨런 포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영화의 내용은 괜찮은 미스테리 추리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만큼 19세기 초반 비인간적인 웨스트포인트의 분위기와 살인 사건, 인간의 심장을 도려내 악마에게 바치는 주술 의식, 그리고 강간 피해로 괴로워하다 결국 자살해버린 딸에 대한 복수극 등의 여러 소재가 다층적으로 얽혀 있는 편입니다. 여기에 사건 해결을 의뢰받은 퇴직 형사 랜더(크리스찬 베일)와 함께 당시 사관생도였던 '미래의 추리소설가' 애드가 앨런 포(해리 멜링)를 등장시켜 추리극에 문학적 향취를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인물은 형사 랜더이지만 마지막에 모든 진상을 밝혀내는 건 애드가 앨런 포의 몫이 됩니다.

 

 

영화는 스콧 쿠퍼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고단했던 시절과 삶의 분위기를 충실하게 고증해내고 있는 편인 반면 장르 영화로서의 보는 재미는 다소 미흡한 편입니다. 감독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다른 감독의 손에 만들어져 조금 다른 분위기의 작품으로 각색, 연출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네요.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랜더 형사가 아니라 아예 젊은 애드가 앨런 포를 중심으로 극의 흐름을 가져가는 것도 방법이었을테고 아주 무시무시한 호러 영화로 변주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페일 블루 아이]는 전반적으로 사실적인 드라마의 밸런스를 잘 잡아나간 만큼 역동적인 극의 리듬감 측면에서는 다소 지루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말이 쉽지 이 두 가지를 모두 다 잡아내는 연출이란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강력 스포일러 경고)

 

 

[페일 블루 아이]는 사관생도의 자살 사건의 해결을 퇴직 형사 랜더가 맡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영화 초반에는 유사한 소재를 다루었던 [어 퓨 굿맨](1992)을 시대적 배경만 바꾼 영화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페일 블루 아이]에서 웨스트포인트는 배경만 제공할 뿐이고, 실질적인 내용은 딸을 가진 두 아버지의 범죄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웨스트포인트의 담당 의사이면서 아들이 사관생도이기도 한 마르퀴스 박사(토비 존스)는 자신의 의술로는 병을 고쳐줄 수 없었던 딸이 악마적인 주술 행위로 상태가 호전되자 가족들의 행위를 방임했고, 또 한 명의 아버지인 랜더 형사(크리스찬 베일)는 외동딸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강간범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단하는 범죄를 저지른 인물입니다.

 

[페일 블루 아이]는 사관생도들의 죽음과 사체 훼손 행위를 불러온 두 가지 사건이 중첩되어 관객들과 추리 게임을 하고 있지만 관객들을 위해서는 두 사건 또는 두 아버지 간의 대비를 애드가 앨런 포의 시각에서 다뤄질 수 있도록 구성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랜더와 포는 극중 유사 부자 관계를 맺기까지 하게 되므로 이 부분 역시 좀 더 강조가 되었어야 마지막 반전의 극적 효과가 더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믿고 보는 크리스찬 베일과 해리 멜링 외에도 로버트 듀발, 샬롯 갱스부르, 길리안 앤더슨, 토비 존스 등 주연급 배우들이 은근히 많이 출연하고 있는데 그 중 일부는 꼭 필요한 캐스팅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특히 로버트 듀발과 샬롯 갱스부르는 카메오 출연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 배역(다른 누군가가 했어도 큰 상관 없었을)이었고 길리안 앤더슨의 경우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어색한 느낌마저 주는 배역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배우들의 캐스팅과 배역 간의 싱크로율까지도 연출의 영역이라고 본다면 이 역시 아쉬운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중절모에 머리 양 옆이 눌려 떡진 랜더 형사의 헤어스타일 만큼이나 영화 전반의 사실적인 비주얼 만큼은 뛰어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 몰입감이 한참 떨어지는 전개는 [페일 블루 아이]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단점입니다. 아마도 이 때문에 넷플릭스의 연말 실적을 올리기 위한 물량 공세에서 한 몫 거들지 못하고 새해 첫 주말로 공개 일정을 잡게 된 것이 아니었나 싶네요. 소설 원작을 각색해서 만든 시대극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최근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원더](2022)가 기대 이상의 몰입감과 좋은 메시지로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것을 떠올리면 [페일 블루 아이]의 경우에는 영화의 기본 재료들이 나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더욱 아쉬울 수 밖에 없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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