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에 개봉했던 데이빗 레이치 감독, 브래드 피트 주연의 신작 [불릿 트레인]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어 신나게 감상했습니다. 주연 배우들이 내한 홍보 행사를 가지는 등 나름 영화 알리기에 신경을 많이 썼던 작품이었지만 '열차 안에서 킬러들이 싸우는 코미디'라는 공간 제약적인 설정에 '블링블링 왜색 창연'한 예고편의 분위기가 영화관으로 향하려는 관객들의 발목을 잡았던 작품이었죠. 당장 영화관으로 달려가게 만들 정도의 작품은 아니라서 아쉽게 패쓰했었는데, 개봉한지 얼마 되지 않아 평소 구독하던 OTT를 통해 방 안에서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건 아무래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불릿 트레인]은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장편 소설 [마리아비틀](2010)을 원작으로 하면서 영화의 배경 역시 도쿄에서 교토로 향하는 초고속 열차를 그대로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신칸센 열차가 유명한 것도 있긴 하지만 영화를 보니 등장 인물들 간에 얽힌 과거 역시 야쿠자 조직과 관련이 있고 무기 역시 총과 주먹 뿐만 아니라 일본도를 사용하고 있기도 해서 원작을 최대한 존중하는 차원에서도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편이 옳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이 워낙 인터내셔널해서(아, 이런 부분이 각색이었을 수도) 마음만 먹었다면 고속열차가 있는 유럽 어느 나라를 배경으로 바꿔 각색을 했어도 크게 어색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사실성이 중요시 되는 종류의 영화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러시아에서 온 괴수 같은 사내가 야쿠자 조직을 접수하고 두목 노릇을 하고 있다는 설정은 정말 와닿지가 않습니다. 일본의 옆 나라 관객 입장에서는 그렇지만 미국과 유럽 쪽 관객들에게는 더욱 상관 없는 대목일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그래서 원작의 설정을 바꿔 의도적으로 각색을 한 것이었다면 덕분에 마이클 셰넌이 연기하는 '백의 사신'(White Death)를 볼 수 있었던 것에 만족을 해야겠네요. 원작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아닌 소설 작품만 있었던 터라 이런 비교와 확인이 쉽지 않은데요, 아무래도 원작은 신칸센을 배경으로 '외국인 킬러'는 등장하지 않았던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원작의 설정을 부분적으로 수정하여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최종 결과물이 애매해지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배경도 고속열차로 유명한 프랑스나 독일, 아니면 러시아 마피아의 등장이 어색하지 않은 영국 정도로 바꿔버렸으면 어땠을까요. 다 바꾸면서도 일본 배경을 남겨두어야 했던 이유는 원작자와의 판권 계약 조건 때문일 수도 있고 영화의 제작자들이나 데이빗 레이치 감독의 취향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혹시나 아직까지 일본 배경이 미국이나 유럽 관객들에게 좀 더 흥미롭게 다가올 것으로 기대했었다면 그외 지역에서는 오히려 역효과나 어색함만 전달할 수 있었다는 점은 놓치게 된 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불릿 트레인]은 사실성 보다는 보는 순간의 재미가 좀 더 중요한 대중적인 액션 장르의 영화입니다. 일부 어색한 부분은 '뭐 그렇다 치고' 얼마든지 넘어가줄 수 있어야 애초에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기로 했던 자신의 선택에 좀 더 걸맞는 접근법이라는 말씀입니다. [불릿 트레인]은 무엇 보다 액션 장인으로 솝꼽히는 데이빗 레이치 감독의 신작입니다. 스턴트 감독 출신으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나오기 힘들다고 생각되었던 아날로그 액션 장르에 심폐 소생술을 해주고 계신 인물이죠. 연출 데뷔작 [존 윅](2014)을 시작으로 [아토믹 블론드](2017)와 [데드풀 2](2018), [분노의 질주 : 홉스 & 쇼](2019)를 통해 우수한 성적으로 검증을 마친 감독의 신작에 브래드 피트가 가세했으니 금상첨화랄 수 밖에요.
[불릿 트레인]은 감독의 전작 가운데 [데드풀 2]에 함께 했던 인물들이 다시 뭉친 느낌을 줍니다. 브래드 피트는 여러 차례 자신의 스턴트 대역을 맡아주었던 데이빗 레이치 감독의 연출작 [데드풀 2]에 자신이 출연했었는지를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아주 찰라의 순간에 카메오로 얼굴을 비췄었고 결국 이렇게 새 영화에 주연으로 함께 했습니다. 반면 [데드풀 2]의 주연이었던 라이언 레이놀즈는 레이디버그(브래드 피트)의 임무를 원래 맡기로 했었던 킬러 카버 역으로 카메오 출연을 하고 있죠. [데드풀 2]에서 행운을 초능력으로 갖고 있는 도미노 역으로 출연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 배우 재지 비츠는 [불렛 트레인]에 독살이 주특기인 호넷(말벌) 역으로 등장하는데 주인공 레이디버그가 중년의 나이에 이런저런 불운에 시달리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캐릭터인 점과 재미있는 대비를 이루고 있기도 합니다.
그외 애런 테일러-존슨, 브라이언 라이리 헨리, 조이 킹, 사나다 히로유키, 마이클 셰넌, 그리고 샌드라 블록까지 주연급 배우들이 배역의 크고 작음에 상관 없이 참 많이들 나와주셨습니다. 등장 인물 대부분이 죽거나 살아남더라도 심하게 망가지며 끝나는, 와충우돌 우당탕탕 하는 영화의 마지막에 그간 레이디버그와 전화 통화로 목소리만 들려주던 마리아(샌드라 블록)가 직접 등장하며 뜬금 없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를 하는 [불릿 트레인]은 딱 그런 영화입니다 - 설득력 있는 서사 보다는 순간순간의 보는 즐거움에 충실합니다. 습관적인 의미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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