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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방송

[영화] 나이브스 아웃 : 글래스 어니언 (Glass Onion : A Knives Out Mystery, 2022)

by 신어지 2022.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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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존슨 감독의 신작 [나이브스 아웃 : 글래스 어니언]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바로 감상했습니다. 전작 [나이브스 아웃](2019)이 상당한 호평과 준수한 흥행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내었던 바가 있었기 때문에 그 후속작에 대한 기대는 자연히 클 수 밖에 없었죠. 마침 새 영화 한 편 감상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점이어서 넷플릭스 측에서도 [나이브스 아웃 : 글래스 어니언]에 걸고 있는 기대감 역시 상당한 편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라이언 존슨 감독은 장편 데뷔작 [브릭](2005)을 통해 보여주었던 영화 장인으로서의 엄청난 잠재력이 아직까지도 만개하지는 못한 상태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블룸 형제 사기단](2008)과 [루퍼](2012), 그리고 TV 시리즈 [브레이킹 배드]의 몇 개 에피소드의 연출을 통해 업계에서의 검증 과정을 거친 후 드디어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2017)의 각본과 연출을 맡게 되었을 때에는 드디어 이 사람의 시대가 도래했구나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스타워즈] 시리즈의 골수 팬층에 의해 엄청한 혹평을 들어야 했었죠. 뭐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 J.J. 에이브람스가 연출했던 전작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2015) 보다 제작비는 더 많이 쓰고도 흥행에서는 그 보다 못한 성적을 냈으니 감독으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결과를 낸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한 방에 훅 간 감독 쯤으로 여겨졌던 라이언 존슨 감독이 3년 만에 [나이브스 아웃]을 들고 다시 나타났을 때 평단과 극장가에서는 격한 반응으로 환영해주었습니다. 영화가 잘 만들어지고 꽤 재미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럴 정도의 호평을 받을만 했느냐에 대해서는 솔직히 의문이 듭니다. 아마도 라이언 존슨 감독의 재기를 바라는 평단의 공감대와 [나이브스 아웃]이 보여준 적절한 수준의 완성도가 맞물려 기대 이상의 흥행 성적으로까지 이어졌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여기에 [나이브스 아웃]의 여주인공 마르타(아나 드 아르마스)를 통해 [스타워즈] 시리즈의 참견꾼들에 의해 배척 받았던 라이언 존슨 감독 자신의 입장을 투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었죠. 아무튼 [나이브스 아웃]의 성공에 힘 입어 감독은 내친김에 후속작 제작을 예고했고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창작자로서 좀 더 자유도를 가질 수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나이브스 아웃 : 글래스 어니언]을 만들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하 스포일러)

 

 

2019년 작 [나이브스 아웃]과 2022년 신작 [나이브스 아웃 : 글래스 어니언]은 같은 감독이 만들었고 동일한 명탐정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이지만 그 결은 상당히 다른 느낌입니다. 전작 [나이브스 아웃]이 고풍스러운 저택을 중심으로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과 같은 고전적인 탐정 추리극의 아우라와 극적 반전의 묘미를 표방했던 작품이라면 [나이브스 아웃 : 글래스 어니언]은 미스테리 추리극 보다는 세태 풍자극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직설적입니다. 영화의 제목 글래스 어니언(Glass Onion)은 등장 인물들이 젊은 시절에 모여 성공을 이야기하던 술집의 이름이기도 하고 세계 최대 기업 알파의 성공으로 억만장자가 된 마일스 브론(에드워드 노튼) 소유의 그리스 섬에 지어진 유리 건축물이기도 하지만, 무엇 보다 실제 양파와 달리 여러 겹의 복잡한 구조를 가진 듯 하지만 그 중심이 바로 들여다 보이는 [나이브스 아웃 : 글래스 어니언]의 플롯 구성을 은유하는 단어로서 읽혀집니다.

 

 

영화의 전반부는 마일스 브론의 초대로 정치인, 과학자, 유명 모델, 인플루언서의 직업을 가진 옛 친구들이 그리스의 섬에 모이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그 와중에 명탐정 브느와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이 불청객처럼 끼어들죠. 애초에 모의 살인극과 범인찾기 놀이를 준비해놓고 손님들을 맞이한 마일스 브론이기에 브느와 블랑의 합류도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었지만 첫 날 만찬에서 블랑은 마일스 브론의 계획에 산통을 깨놓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진짜 살인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억만장자의 대저택은 삽시간에 충격과 공포의 분위기로 돌변합니다.

 

 

후반부에서 영화는 전반부 동안 관객들 앞에 감추어 놓았던 사건의 내막을 '직설적으로' 설명합니다. 파티에 초대된 불편한 손님 앤디 브랜드(자넬 모네)는 사실 며칠 전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앤디의 쌍둥이 동생 헬렌이었고, 헬렌은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누군가에 의한 살인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브느와 블랑의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죠. 영화의 후반부는 전반부에서 사람들이 섬에 도착한 이후 일어났던 일들을 브느와 블랑과 헬렌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정리해주면서 모든 사건의 중심점에 마일스 브론이 있음을 선언합니다. 이 때문에 영화는 미스테리 추리극으로서의 재미는 현저하게 반감이 되는 반면 마일스 브론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의미에 집중하도록 합니다. 앤디의 비즈니스 모델을 훔치고 회사를 장악한 마일스 브론은 정치, 과학, 연예, 언론 전방위에 자금을 대면서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인물이라는 거죠. [나이브스 아웃 : 글래스 어니언]는 본래 잘 하는 일이라고는 훔치고 배신하는 것 밖에 없는 부의 권모술수를 속시원하게 까발리는 내용을 담은 풍자 코미디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마일스 브론의 범죄와 모든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막상 마일스 브론을 처벌하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브느와 블랑은 헬렌을 도와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거기까지라며 한발짝 물러나는 입장을 취합니다. 헬렌은 애써 되찾은 언니 앤디의 비즈니스 모델 원본이 불태워져서 결정적 증거물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마일스 브론을 응징하는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을까요. [나이브스 아웃 : 글래스 어니언]은 범인이 누구인지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 다음 단계에 대한 해법을 영화적으로 풀어내는 쪽에 방점을 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분노에 가득찬 헬렌의 전복적인 행동은 '유리 양파'를 날려버리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 마일스 브론이 자신의 저택에 고이 모셔놓고 있던 절대적인 걸작 [모나리자]까지도 불태워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다시 한번 [스타워즈] 시리즈에 대한 라이언 존슨 감독의 일갈로서 해석될 여지를 남기고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나이브스 아웃 : 글래스 어니언]는 라이언 존슨 감독에게 뿐만 아니라 많은 배우들에게도 일종의 자유의 땅처럼 인식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작비가 불과 4천만불 수준에 불과한 작품임에도 제임스 본드 역에서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결국 [007 노 타임 투 다이](2021)로 마지막을 장식했던 다니엘 크레이그를 비롯하여 최근 몇 년 간 주류에서 밀려난 듯 했던 에드워드 노튼과 케이트 허드슨이 함께 했으며 데이브 바티스타, 캐서린 한, 제시카 헨윅, 자넬 모네, 매들린 클라인, 레슬리 오덤 주니어와 같이 한창 잘 나가고 있거나 새롭게 주목을 받을 만한 배우들이 출연했습니다. 여기에 에단 호크와 휴 그랜드, 첼리스트 요요 마,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 등의 카메오 출연은 라이언 존슨 감독에 대한 지지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지표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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