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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2022)

신어지 2022. 10. 25.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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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의 tvN 본방이 끝나기를 기다려 넷플릭스를 통해 한꺼번에 감상했습니다. 동명 소설과 영화화된 작품들로 널리 알려진 제목인데 정서경 작가의 드라마라는 걸 본방 중간쯤 알게 되었지만 역시 본방 사수 보다는 조금 기다렸다가 스트리밍으로 한번에 몰아보는 편이 저에게는 잘 맞는 것 같네요.

[헤어질 결심]의 상영을 전후로 예전과 달리 정서경 작가가 박찬욱 감독과 인터뷰에 함께 자리를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는데 아마도 TV 방영을 앞두고 있던 [작은 아씨들]의 홍보와 관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박찬욱 감독 작품에는 빠짐없이 참여해온 류성희 미술감독도 참여(정서경 작가의 삼고초려가 있었다고 하네요)했다고 해서 더욱 기대가 되었습니다.


[작은 아씨들]의 초반은 박찬욱 감독이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을 뿐, 그의 영화들에 기대할 법한 상당한 퀄리티를 보여주었습니다. 세 자매의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너무 안닮아 보이는 문제는 차차 익숙해질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지만(결국 마지막까지 익숙해지지 않았고 세 자매의 너무 다른 성격 때문에 얼굴 안닮은 건 결국 중요하지 않게 되더군요) 각본, 미술, 촬영, 그리고 음악까지 뭐 하나 흠 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상상을 뛰어넘는 이야기의 전개를 황당하게 받아들이게 되느냐 아니면 흥미진진하게 따라가게 되느냐는 연출의 세밀함에 달려있는 부분이라 생각되는데 [빈센조]를 연출했던 김희원 PD가 동일 인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작은 아씨들]의 초반부는 정말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각기 다른 매력과 캐릭터로 도무지 자매 같아 보이지 않은 세 자매


그러나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푸른 난초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정란회라는 비밀 조직이 드러나고 역대 최악의 빌런으로서 드라마를 장악하던 유력 정치인 박재상(엄기준)이 한 방에 사라지는 등, 시청자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반전이 계속 될 수록 극의 개연성과 사실성이 점점 사라져 버렸습니다. 자연히 [작은 아씨들]과 관련해 박찬욱 감독을 소환하는 건 더이상 의미 없는 일이 되었고 결국 정서경 작가도 12화 분량의 드라마 환경에 걸맞는 극적인 스토리텔링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 가는 곳마다 이게 있는 건데


극의 초반부터 반복적인 소재로 등장한 푸른 난초는 일종의 맥거핀에 불과한 건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만 결국 정란회와 그간의 모든 죽음을 설명하는 핵심이었죠. 이 정도면 드라마의 제목을 [작은 아씨들]가 아니라 [푸른 난초]라고 했었어야 더 어울렸던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결국 정서경 작가가 직접 밝렸던 "원작 [작은 아씨들]의 서로 다른 성격의 여주인공들이 현대 사회에 놓였을 때"를 보여주던 극 초반의 장점들은 후반부로 가면서 극단적인 상황 전개의 반복과 함께 마침내 드러나는 베트남전과 푸른 난초의 과거사에 가려리게 됩니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베트남전과 개발 독재, 부와 권력의 세습화라는 테마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쪽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 이 구역의 미친 년은 바로 나야


12화 분량의 TV 시리즈인 만큼 담아낼 수 있는 주제와 이야기 거리가 좀 더 다양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마지막에 드러난 것들이 극 초반에 강조되었던 것들을 밀어내는 효과는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작은 아씨들]의 경우 첫 회를 보았을 때 와, 이거 정말 대박이라며 좋아했던 건 가난과 부에 대한 세 자매의 각기 다른 태도, 그 안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뜻 밖의 사건들이었는데 그 뒤로 이어지는 자극적인 전개 속에 어느새 잊혀져버린 것이 못내 안타까웠던 것 같습니다. 700억을 알차게 나눠 갖고 꿈만 같은 강변 신축 아파트를 얻게 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들 [작은 아씨들]의 처음 그 느낌은 되살려지지가 않습니다.

아파트 가격이 벌써 폭락하고 있어요


전반적으로 이야기가 너무 거대한 흑막으로 연결되면서도 대충 던져놓고 마무리 짓는 모양새였고, 중반 이후 극적인 반전을 너무 자주 거듭하는 모습에 오히려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린 작품으로 남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드라마 한 작품에 너무 대단한 걸 기대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작은 아씨들]의 초반 만큼은, 아니 중반까지도 정말 대단했던 게 사실이니까요. @

 

 

PS. [작은 아씨들]을 보다가 굉장히 흥미로웠던 부분 중에 하나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력 정치인 부부의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한 분들에 대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박재상의 살인 장면이 만천하에 공개되었음에도 대변인이 '조작된 영상'이었다며 대놓고 거짓말을 하고 그런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당선이 되는 부분에서는 해외 순방길에 카메라 앞에서 말 함부로 해놓고선 전국민을 시청각 장애자로 만들어버리는 현실 상황을 떠올릴 수 밖에 없더군요. 이 시리즈가 씌여지고 제작된 시점은 분명 해외 순방 이전일텐데 어떻게 이런 일을 그대로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인지... 이 정도면 정서경 작가의 각본은 거의 신 들린 수준이 아니신가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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