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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관의 피 (The Policeman's Lineage, 2022)

신어지 2023. 1. 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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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를 통해 2022년 1월 개봉작 [경관의 피]를 감상했습니다. 일본 작가 사사키 조가 2007년에 출간한 동명의 경찰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작에서는 3대로 이어지는 경찰관 집안 안조 일가의 대하 드라마이고 2009년에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아사히 TV에서 방영이 되었다고 하네요. 영화 [경관의 피]는 그 가운데 3대째인 안조 가즈야가 경시청 수사 4과 계장 가가야 히토시에 대한 내사를 하는 과정 부분만을 각색해서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영화 [경관의 피]에서 조진웅이 연기한 박강윤 반장이 원작에서의 가가야 히토시인데, 2011년에 출간된 후속작 [경관의 조건]에서는 전작으로부터 9년 후의 안도 가즈야와 가가야 히토시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영화 [경관의 피]의 극장 반응이 좋았었다면 속편 제작을 위한 원작 스토리는 이미 확보된 셈이라 추가로 판권 계약을 하고 각색만 하면 되었을 것 같네요. 하지만 [경관의 피]의 국내 누적관객수는 아쉽게도 약 68만 명에 그쳤습니다.

 

 

조진웅을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라고 해서 무턱대고 큰 기대를 갖고 달려들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제껏 출연작들을 전부 본 것도 아니긴 한데 그 중 아주 좋았던 [독전](2018)과 같은 작품이 있었던가 하면 [퍼펙트맨](2018)처럼 한숨만 나오는 졸작도 있었으니까요. [경관의 피]도 사실 있는 줄도 몰랐던 영화였다가(그럴 만큼의 화제 거리가 되지 못함) 넷플릭스에 뜬 썸네일을 보고서도 '조진웅 = 경찰관' 이미지를 팔아먹는 또 한 편의 영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감상을 망설였더랬습니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조차 비슷비슷한 조합으로 보이기도 했지요. 이규만 감독의 필모를 살펴보아도 아, 이 영화는 봐야겠구나 하는 건 없었습니다.

 

 

그렇게 반신반의 하면서 보기 시작한 영화가 [경관의 피]였는데요, 결론부터 정리하자면 작품에 대한 제 평가도 반반 정도입니다. 그중 좋았던 절반은 사실적인 톤으로 연출된 전반적인 분위기와 함께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경찰이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최근에 가장 크게 성공한 경찰관 영화로는 마동석 주연의 [범죄도시]나 앞서 조진웅의 출연작 중에 좋았다고 언급한 [독전] 정도를 언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두 작품 모두가 극적인 재미를 위해 경찰 캐릭터나 활약상에 다소 간의 과장이 들어간 편이었던 반면 [경관의 피]에 등장하는 경찰의 모습은 상당히 현실적인 느낌을 줍니다. 이런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배우들의 연기 뿐만 아니라 카메라도 의도적으로 약간씩 흔들면서 현장감을 주려는 인상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경관의 피]는 생각했던 것 보다 좀 더 세련된 연출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보기 좋았던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경관의 피]에서 보여진 경찰들의 모습이 실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거나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로 사실적이었다고까지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요.

 

(이하 스포일러)

 

 

그리고 [경관의 피]는 '악을 잡기 위해 악해져도 되는가'라는 정의의 실천적 방법론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마약 조직 범죄 수사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보여온 박강윤 반장(조진웅)이 부정부패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감찰계장(박희순)은 경찰관 집안 출신인 최민재 형사(최우식)에게 박강윤에 대한 내사 임무를 비밀리에 맡기는데, 벤츠 승용차를 몰고 비싼 옷을 입고 다니지만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수사 방식으로는 접근조차 어려운 고위층 범죄자들을 상대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을 확인한 최민재는 박강윤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죠. 고리타분할 정도의 원칙주의자였던 최민재는 박강윤을 통해, 그리고 박강윤과 마찬가지로 경찰 조직 내 비밀조직인 연남회에 몸 담았던 자신의 아버지에 관한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 등을 통해 성장과 변화를 하게 됩니다.

 

 

반면 [경관의 피]가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영화가 건드리고 있는 중요한 질문, '악을 잡기 위해 악해져도 되는가'에 대해 스스로 너무 쉽게 답을 내려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강윤이 마약 조직들과 상대하기 위해 마약 관련 인물들을 정보원으로 삼거나 자금 출처로 삼는(물론 빌렸던 자금은 다시 갚고 이 과정에서 위험에 빠지기도 하지만) 행위는 분명 선을 넘어서는 일들이고, 나아가 최민재의 아버지가 마약 중독이 되었듯이 많은 경우 그 자신 역시 쉽게 타락하게 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에 대한 최민재의 고민, 결국 관객의 몫이기도 한 이 질문에 대해 너무 간단하게 결론을 내려버리는 실책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약 조직의 검거에 공을 세우고도 법률 위반 등으로 투옥이 된 박강윤을 최민재가 영리한 방식으로 다시 풀어주는 결말은 안도감이나 통쾌함 보다는 뭔가 억지스러운 느낌을 남기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경관의 피]를 보고나서 에릭 클립튼의 히트곡 'Tears In Heaven'이 OST로 사용되었던 영화 [러쉬](1991)를 오랜만에 떠올리게 되었는데 이 영화가 바로 마약 조직의 검거를 위해 잠입 수사를 하다가 경찰관들 자신들이 마약 중독에 걸리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릭 클립튼의 노래와 달리 영화 [러쉬]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고 말았지만 오히려 감상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게 되는 것은 영화의 내용 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 마지막까지 유지되었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선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경관의 피]도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이나 고리타분한 느와르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인 결말을 담담히 보여주며 마무리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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